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냥 농담이었는데.”

팀 회식 자리. 신입사원 A씨에게 상사가 “남자친구 있어? 선배랑 사귀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웃었다. A씨도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 상사와 마주칠 때마다 불편했다. 회의 때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움츠러들었다.

이건 농담일까, 성희롱일까?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발생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이 정도는 참아야 하나”, “신고하면 내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침묵한다.

법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는 직장 내 성희롱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

이 정의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1. 업무관련성: 언제, 어디서든 성립 가능

“근무시간에, 사무실에서만” 성희롱이 성립하는 게 아니다.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

  • 회식 자리, 야유회, 출장 중
  • 퇴근 후 업무 협의를 위해 만난 자리
  • 업무용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한 발언
  • 직장 동료와의 사적 만남이라도 직장 내 지위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

실제 사례: 한 연구기관 고문이 연구위원을 후원금 관련 업무로 퇴근 후 불러내 성희롱한 사건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근무시간 외, 직장 밖이라도 업무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사례: 공식 회식 후 귀가하는 차 안에서 발생한 성적 발언에 대해서도 “퇴근길이지만 회식의 연장선상"으로 보아 성희롱으로 인정됐다.

2.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

핵심은 **“피해자가 원치 않았는가”**이다.

중요한 점:

  •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어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동의한 것이 아니다
  • 웃거나 못 본 척 넘어간 것이 용인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피해자가 성희롱에 대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더라도, 행위자와의 관계, 행위의 내용과 정도 등을 종합하여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왜 피해자는 명확히 거부하지 못하는가?

  • 직급 차이로 인한 권력 불균형
  • 2차 피해(보복, 따돌림,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 사회 경험 부족으로 대처 방법을 모름
  • “민감하다”, “유난 떤다"는 낙인이 두려워서

3.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 근로조건상 불이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① 환경형 성희롱: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

  • 외모나 신체에 대한 성적 평가
  •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
  • 불필요한 신체 접촉
  • 음란물을 보여주거나 전송

② 조건형 성희롱(quid pro quo): 성적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

  • “술자리 따라오면 승진시켜 줄게”
  • 성적 요구 거부 후 부당한 인사조치
  • 데이트 거절 후 업무에서 배제

이것도 성희롱일까? 현실 사례

사례 1: “예쁘네, 남자친구 있어?”

상황: 40대 부장이 20대 신입 여사원에게 “예쁘네. 남자친구 있어? 없으면 우리 부서 김 대리 소개해 줄까?“라고 말했다.

판단: 명백한 성희롱이다. 외모 평가와 이성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업무와 무관한 성적 언동이다. “예쁘다"는 칭찬이 아니라 상대방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이다.

적절한 대화: “어서 오세요. 우리 부서에 배치되신 걸 환영합니다.”

사례 2: 단톡방의 음담패설

상황: 남자 직원들만 있는 부서 단톡방에서 여성 연예인 사진을 공유하며 성적 농담을 주고받았다. 여직원은 해당 톡방에 없었다.

판단: 여직원이 직접 보지 않았어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대화가 오가는 조직 문화 자체가 여성 직원에게 적대적 근무환경을 조성한다. 실제로 나중에 여직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성적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사례 3: “아줌마, 커피 좀”

상황: 남자 상사가 여자 부하직원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판단: 이 자체는 “성적” 언동이 아니므로 엄밀히는 성희롱이 아니다. 그러나 성차별적 언동이며, 이런 행동은 성희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성을 “아줌마"로 호칭하고, 업무와 무관한 커피 심부름을 여성에게만 시키는 것은 성별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행위다.

사례 4: 백허그로 업무 지도

상황: 남자 교수가 여학생에게 실험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며 뒤에서 안는 자세(백허그)로 손을 잡고 지도했다.

판단: 대법원은 이를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업무 지도에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었고, 학생은 교수와의 권력관계 때문에 거부하기 어려웠다. “지도 목적이었다"는 변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례 5: 고객의 성희롱

상황: 콜센터 직원 B씨는 고객으로부터 “목소리 섹시하네, 몇 살이야? 나랑 만날래?“라는 전화를 받았다.

판단:

  • 고객은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는 아니다
  • 그러나 회사는 B씨의 요청이 있으면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등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 B씨가 이를 거부했다고 불이익 조치를 하면 회사가 처벌받는다
  • 고객의 행위는 성폭력특별법상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로 형사처벌 가능(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

피해를 당했다면: 3단계 대응

1단계: 증거 확보

기록하라:

  • 날짜, 시간, 장소, 구체적 발언과 행동
  • 목격자가 있었다면 이름과 연락처
  • 카톡, 이메일, 문자 등은 캡처하여 보관
  • 가능하면 녹음(본인이 당사자인 대화는 동의 없이 녹음 가능)

2단계: 회사에 신고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회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

  1. 객관적 조사 실시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 피해자, 행위자, 목격자 조사
    • 제3자 조사관 투입 권장
  2. 피해자 보호 조치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부여 등
    • 주의: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조치는 불가
  3. 행위자 징계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 성희롱이 확인되면 징계 필수
    • 경고, 감봉, 정직, 해고 등
  4. 신고자 보호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 절대 금지
    • 이직 강요, 따돌림, 인사 불이익 등 모두 처벌 대상

2차 피해 방지: 회사는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 의사에 반해 누설하면 안 된다(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3단계: 외부 기관 활용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 고용노동부 진정: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

    • 회사의 조사·조치 의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 사업주가 직접 성희롱한 경우 1천만원 이하 과태료
  •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 1331

    • 조사 후 시정권고, 징계권고 가능
    • 악질적인 경우 검찰 고발
  • 형사 고소: 성희롱이 성추행, 성폭행 등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면 경찰 고소 가능

  • 민사 소송: 손해배상 청구

    •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 회사는 사용자 책임으로 배상 의무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필수 의무

1. 예방교육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

  • 연 1회 이상 실시
  • 1시간 이상
  • 전체 직원 대상(사업주 포함)
  • 강사 교육, 영상 교육, 간부 교육 등 다양한 방법 가능

2. 예방지침 수립 및 게시

  • 성희롱 행위 예시
  • 신고·조사 절차
  • 피해자 보호 방안
  • 행위자 징계 기준

3. 고충상담원 지정

  • 고충 접수 및 상담
  • 조사 지원
  • 피해자 보호

예방이 최선이다

효과적인 조직문화:

한 IT기업은 이렇게 바꿨다:

  • CEO가 분기마다 “성희롱 제로 선언” 반복
  • 신입사원 입사 첫날 성희롱 예방교육 필수
  • 익명 신고 채널 운영 (외부 전문기관 위탁)
  • 위반 시 직급 무관 엄중 징계 원칙 천명
  • 관리자 평가에 “팀 내 성희롱 제로” 항목 포함

결과: 3년간 성희롱 신고 0건.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안전한 근무환경” 점수 급상승.

마치며: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은 최근 판결에서 강조했다:

“법원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피해자와 행위자의 관계, 행위의 상황과 맥락,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성차별과 권력 불균형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농담이었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불편해했다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폭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가 아니라 “이건 상대방이 불편할 수 있겠지"라는 감수성이다.

존중은 예민함이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이다.


참고자료

  • 고용노동부,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응 매뉴얼” (2024)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 대법원 2018.4.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 진정 사건 결정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