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가맹사업법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그런데…”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연단에 섰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가맹사업법이 아니라 “민주당의 8대 악법"에 집중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지했다. “의제와 관련된 발언만 하라.”
나 의원은 계속했다. 결국 의장은 마이크를 꺼버렸다.
여야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의장석으로 몰려들었다.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문제의 법안, 가맹사업법 개정안.
국민의힘도 “찬성한다"고 말하는 이 법안은 대체 무엇이길래, 59개 법안 전체에 필리버스터가 걸렸고, 정치권이 이렇게 시끄러운가?
편의점주의 하루
새벽 5시. 편의점 사장 김씨는 문을 연다.
본사에서 지정한 POS 시스템, 본사가 정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도시락, 본사가 강제하는 이벤트 물품. 본사는 “브랜드 통일성"이라고 하지만, 김씨는 안다. 본사의 이익을 위한 거래라는 것을.
문제는, 협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작년, 본사는 감자칩 공급가격을 20% 올렸다. 김씨를 포함한 10명의 점주가 가맹점주협의회를 만들어 본부에 협의를 요청했다.
본부의 답변: “검토하겠습니다.”
3개월이 지났다. 아무 답도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가격은 올랐고, 김씨의 마진은 줄었다.
현행법에는 제재 조항이 없다. 본부가 협의에 응하지 않아도 벌금도, 과태료도 없다.
무엇이 바뀌는가: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핵심
1. 가맹점주단체 등록제
현행: 누구나 “가맹점주협의회"를 만들 수 있지만, 법적 지위 없음
개정안:
- 일정 요건 충족 시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
- 등록된 단체에 공적 대표성 부여
- 예: 해당 브랜드 전체 가맹점의 10% 이상이 가입한 단체
2. 단체협상권 부여
가장 핵심적인 변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과 유사한 권리를 가맹점주단체에 부여.
등록된 단체가 협상 요청하면:
- 가맹본부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 불가
- 불응 시 제재 대상 (과태료 부과)
협상 대상:
- 필수품목 가격 인상
- 공급가격 산정방식 변경
- 계약 조건 불리한 변경
- 영업시간, 휴무일 등
3. 가맹지역본부 보호
가맹사업은 3단 구조다:
- 가맹본사 (예: 롯데리아 본사)
- 가맹지역본부 (예: 서울지역본부)
- 가맹점 (예: 강남역점)
현행법은 가맹점만 보호했다. 개정안은 지역본부도 보호 대상에 포함.
4. 남용 방지 안전장치
우려: “이거 악용하면 어쩌죠?”
개정안은 이를 대비했다:
- 정당한 사유 있으면 본부가 협의 거부 가능
- 단체별 연간 협의 요청 횟수 제한
- 복수 단체 있으면 일괄 협의 절차 마련
- 허위 정보 제공한 단체는 등록 취소
왜 필요한가: 구조적 불균형
통계로 본 현실
-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 약 28만 개 (2024년 기준)
- 가맹점주 수: 자영업자의 약 40%
- 평균 계약 기간: 3~5년
- 계약 갱신율: 약 60% (본사가 거부하면 폐업)
불공정 사례
사례 1: 일방적 필수품목 추가
한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는 계약 중에 “신제품 소스"를 필수품목으로 추가했다. 가격은 기존 소스의 1.5배. 점주들이 반발했지만, 본사는 “브랜드 통일성"을 이유로 강요했다.
점주 선택지: 받아들이거나, 계약 해지(= 폐업)
사례 2: 24시간 영업 강제
편의점 본사가 “24시간 영업"을 계약 조건으로 추가했다. 인건비 상승과 심야 매출 감소로 점주들은 적자였다. 본사는 “다른 지역은 다 하고 있다"며 강요했다.
점주의 월 순이익: 70만원 감소.
사례 3: 비용 떠넘기기
한 커피 프랜차이즈는 “브랜드 광고비"를 전체 점포에 분담시켰다. 그런데 광고는 서울 강남 지역에만 집중됐다. 지방 점주들도 같은 금액을 냈다.
점주들의 항의: “우리 지역엔 광고 한 번도 안 나왔는데?”
본사의 답변: “전국 단위 브랜드 광고니까 모두 부담해야죠.”
왜 개인은 싸울 수 없나
권력 불균형의 구조:
- 정보 비대칭: 본사는 전체 가맹점 데이터 보유, 점주는 자기 매장 정보만
- 계약 갱신 공포: 본사 기분 나쁘게 하면 갱신 거부 → 폐업
- 개별 협상 불가능: 1명이 항의하면 “싫으면 나가세요”
- 법적 대응 비용: 소송 걸려면 수천만원, 대부분 점주는 감당 불가
왜 논쟁적인가: 찬반 양론
찬성: 공정한 협상 구조 필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자):
“프랜차이즈 시장에서 가맹본부와 가맹점 간 거래의 공정성은 수많은 자영업자의 생존을 가르는 문제다. 일방적 비용 전가와 부당한 계약 해지, 정보 비대칭 등 불공정 관행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주병기 위원장:
“가맹점주는 본부보다 협상력이 약하고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알기 어렵다.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권익 향상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가맹점주협의회들의 목소리:
- “지금은 본사가 ‘검토하겠다’고만 하면 끝이다”
- “단체로 목소리를 내도 법적 강제력이 없어 무시당한다”
- “노동자에게 노조가 있듯, 가맹점주에게도 협상 권리가 필요하다”
반대: 프랜차이즈 산업 위축 우려
프랜차이즈 본부들의 우려:
1. 협상 비용 증가
- 각 지역별로 다른 단체와 협상해야 하면 업무 부담 폭증
- 특히 전국 수백~수천 개 점포 가진 대형 브랜드는 감당 어려움
2. 브랜드 통일성 훼손
- 지역마다 다른 조건으로 협상하면 일관된 브랜드 관리 불가능
- 소비자 입장에서도 혼란 (A지역과 B지역 가격/품질 다름)
3. 악용 가능성
- 일부 점주가 과도한 요구하며 협상 남용
- 본사의 정당한 경영 판단도 제약받을 위험
4. 창업 시장 위축
- 본사 입장에서 리스크 증가 → 신규 브랜드 론칭 꺼려짐
- 결국 창업 시장 전체 위축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입장: “가맹본부의 정당한 경영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면,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 협상권은 필요하지만, 세밀한 장치가 더 필요하다.”
국민의힘의 애매한 입장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명확히 말했다:
“가맹사업법 개정안 자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당 의원들이 동의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즉, 법안 내용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왜 필리버스터를 했나?
“민주당의 8대 악법 저지를 위해.”
가맹사업법은 인질이 된 셈이다. 여야 정치 싸움의.
해외 사례: 다른 나라는 어떻게?
미국: 주(State)별 상이
캘리포니아:
- 가맹점주 협회 결성 허용
- 단, 단체협상권은 제한적
- 본사의 일방적 계약 변경은 금지
결과: 가맹점주 권익은 보호되지만, 미국식 자유 계약 원칙도 유지
프랑스: 강력한 가맹점주 보호
- Loi Doubin (두뱅법): 계약 전 20일 이상 정보 공개 의무
- 계약 갱신 거부 시 본사가 입증 책임
- 일방적 계약 변경 시 점주에게 보상 의무
결과: 유럽에서 가맹점주 권익이 가장 강하게 보호되는 국가
일본: 공정거래위 중재 시스템
- 분쟁 발생 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재
- 단체협상권보다는 개별 분쟁 해결에 초점
- 본사와 점주 모두 조정안 따를 의무
결과: 법적 분쟁보다 행정 중재로 빠른 해결
쟁점: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핵심 질문 1: “정당한 사유"의 기준은?
개정안은 본부가 “정당한 사유” 있으면 협의 거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정당한 사유인가?
- 단체 가입률이 5%뿐이면? → 대표성 부족?
- 경쟁사와의 동일 조건 유지 필요하면? → 정당?
- 협상 요구가 월 2회인데 또 요청하면? → 남용?
문제: 법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 결국 공정위 판단 or 법원 판결로 가야 한다.
핵심 질문 2: 브랜드 통일성 vs 점주 자율성
본사 입장: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맛, 똑같은 서비스가 프랜차이즈의 핵심 아닌가?”
점주 입장: “그래도 지역 특성은 반영해야지. 강남이랑 시골 장터가 같을 순 없잖아?”
사례: 맥도날드는 전세계 어디서나 빅맥 가격이 비슷하다. 이게 브랜드파워다. 그런데 한국 맥도날드 강남점과 춘천점이 다른 가격이면?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협상권의 범위는?
- 가격: 협상 가능? (→ 브랜드 통일성 훼손)
- 필수품목: 협상 가능? (→ 품질 일관성 문제)
- 영업시간: 협상 가능? (→ 24시간 편의점 아닌 곳 생김)
핵심 질문 3: 가맹점주의 정체성
철학적 질문: 가맹점주는 노동자인가, 자영업자인가?
노동자 관점:
- 본사가 정한 룰 안에서 일함
- 본사가 임금(마진)을 정함
- 해고(계약 해지) 권한이 본사에 있음
- → 노조처럼 단체협상권 필요
자영업자 관점:
- 스스로 계약을 선택했음
- 위험도 본인이 부담함
- 투자 손실도 본인 책임
- → 계약 자유 원칙 존중해야
법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12월 11일, 표결
12월 9일 자정, 정기국회가 종료되며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결됐다.
국회법에 따라, 12월 11일 임시국회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갖고 있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통과되면 어떻게 되나
단기 효과:
- 가맹점주단체들이 공정위에 등록 신청
- 주요 프랜차이즈 본사들, 협상 대응 조직 신설
- 첫 협상 사례들이 법 해석의 선례가 됨
중기 효과:
- 불공정 관행 개선 (긍정)
- 협상 비용 증가로 소규모 브랜드 부담 (부정)
- 분쟁 사례 증가 → 공정위·법원 판례 축적
장기 효과:
- 프랜차이즈 생태계 재편
- 본사-점주 관계의 새로운 균형점 형성
- 혹은… 프랜차이즈 시장 위축?
마치며: 누구의 생존인가
새벽 5시, 편의점을 여는 김씨.
저녁 11시, 본사에서 가맹점 관리 전략을 짜는 박 본부장.
둘 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
문제는, 지금의 구조가 한쪽에만 유리하게 짜여있다는 것이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완벽하지 않다. 애매한 부분도 많고, 부작용 우려도 있다.
그러나 질문은 이것이다:
“현상 유지가 공정한가?”
28만 개 가맹점의 점주들은 말한다: 아니다.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말한다: 섣부르다.
법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12월 11일, 국회는 선택할 것이다.
당신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살 때, 치킨을 주문할 때, 커피를 마실 때.
그 뒤에는 이런 싸움이 있다.
생존을 위한, 그리고 공정함을 위한.
참고자료
-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의안번호 2201000)
-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점주 권익 강화 종합대책” (2025.9.23)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
-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의견서
법안 진행 상황
- 2024.6.26: 민병덕 의원 대표발의
- 2025.4.17: 패스트트랙 지정
- 2025.12.9: 국회 본회의 상정, 필리버스터 진행
- 2025.12.11: 표결 예정
